'타인은 지옥이다'라는 드라마에 대해서 알게 되었을 때가 첫 직장에 입사하고 6개월쯤 되어서였다. 새로운 사람들 틈 속에서 소위 말하는 사회생활이라는 것을 시작한 지 반년 째였을 때, 출근할 때마다 도로로 뛰어들고 싶은 충동과 싸워야 할 정도로 나는 지쳐있었다. 교육기간은 겨우 3개월 안쪽. 허겁지겁 일을 배웠다.
그 교육이라는 것마저도 가르치는 사람마다 말이 달라서 이 사람을 따라 이렇게 하면 누가 가르쳤냐며 욕먹고, 저 사람을 따라 저렇게 하면 누가 이따위로 가르쳤냐며 욕먹어야 했다. 눈칫밥은 있는 대로 얻어먹으면서도 눈치라는 것이 뜻대로 생격지지는 않을 시기였다. 눈물을 삼키고 꾸역꾸역 욕을 먹으며 일 하고 나면, 너덜 해진 나에게 돈이 떨어졌다.
행복한 미래를 꿈꾸려 내렸던 수많은 선택과 그 선택의 결과가 이런 괴로움이었다니, 일을 하면서도 내가 내 무덤을 팠구나 하고 밥 먹듯 후회를 했다. 그래도 한때 나의 벅찬 꿈이었던 것들이 나에게 죽음까지 생각하게 만드는 원인이 되자 맨정신을 유지한 채 버텨내기가 많이도 힘들었다. 여기까지 올라오기 위해 내가 스스로를 다독이며 버텨냈던 고난과 시련들, 사회에 나가면 그것보다 더한 것들이 있을 것이라고 귀에 딱지 않도록 듣긴 했다만 이것도 해냈으니 저것도 해내겠지 쉽게 생각했던 건 아니었는지 후회 했다. 알고 있다고 한들, 겪어보면 늘 새로운 아픔이기에.
물론 실수와 질못이 없었다면 거짓말이다. 그러나 단 한번의 실수조차도 용납되지 않는 무거운 분위기 속에 나의 실수 하나는 눈덩이처럼 불어나 사람들 입에서 씹히고 또 씹혔다. 격려는 당연하게도 없었고 나를 주시하는 수많은 눈동자들의 눈엣가시가 되어 있었으니 이 짓도 얼마 못하겠구나 직감할 수밖에 없었다.
물론 지금도 현 직장에 다니고는 있다만 거의 뇌를 빼놓고 다니고 있다. 페르소나로 중무장을 한 채 오로지 정신력으로 버티고 있다고 해야 옳겠다. 이것마저 고갈되는 시기가 왔을 때, 퇴사라는 최후의 수단을 선택하지 않을까 싶다.
일적으로 미숙한 부분이 줄자, 불편했던 사람들과 언제 그랬냐는 듯 이야기를 주고 받지만 나는 아직 그때의 그 순간들을 기억하고 있다. 상처가 흉터가 되었을 뿐.
대학생 때의 나는 조금 치열했다. 침대 밑에 다 쓴 콘돔이 나오던 한 평짜리 고시원에서 살아본 적도 있고, 아침부터 저녁까지 비 맞으며 아르바이트한 적도 있고, 너무 추웠던 2019년도의 새해를 노숙하시는 분과 함께 지하철 바닥에 앉아 맞이한 적도 있었다. 뻔하지만 고생하던 부모님은 내가 마냥 주저앉아 울 수 없는 이유이기도 했다.
그래서 였는지, 드라마에 나온 종우가 마치 나 같아서 껄끄러웠다. 지켜보고 싶기도 했고, 그렇지 않기도 했다.
가난이 빚어낸 더러운 성격과 어리숙한 형을 돌보는 불쌍한 엄마는 종우가 고향을 떠나 서울의 한 고시원에서 자리를 잡게 된 이유였다. 잘 사는 선배에게 빌붙어 인턴 생활을 시작했고 이유없이 자신을 싫어하는 사수와 수상한 고시원 사람들 때문에 점점 날을 세워갔다.
그러면서 종우 속내에 자리잡고 있던 광기가 사이코패스 서문조를 만나면서 점차 표출되기 시작하는데, 때마침 인내심이 바닥나고 있던 나도 우연히 서문조 같은 사람을 만나게 된다면 어떨까, 그와 똑같은 사람이 되어버리지는 않을까 싶어 두렵기도 했다.
점점 변하는 종우과 서문조의 관계가 곱씹을수록 공감되고 좋아서 드라마에 한참을 빠져지냈다. 그러다 문득 극 중에서 지속적으로 언급되던 책 한 권이 궁금해졌다. 버스를 타고 서울로 막 상경하던 종우가 들고 있던 바로 그 책, 프란츠 카프카의 변신. 의미없이 소품으로 사용했을 것 같지는 않고, 작가가 표현하고 싶은 이야기와 일맥상통하는 부분이 있었던 게 아닐까 싶어 직접 구매해 읽어보기로 했다.
하루아침에 벌레가 된 직장인 그레고르 잠자의 이야기였다.
짧은 단편선에 속하지만 여운은 그보다 훨씬 길었다. 주인공 그레고르의 죽음 때문이다. 평범한 직장인이었던 그레고르는 벌레가 되고 난 뒤, 경제력을 완전하게 소실한 채 방에 갇혀 지냈다. 벌레가 된 기간이 길어질수록 인간성은 상실되었고, 가족들은 그런 그를 더 이상 자신의 아들이자 오빠이자 가족으로 보지 못했다. 유일하게 돈을 벌고 있던 사람이었기 때문에 가족들은 가난에 허덕이게 되고, 걸림돌이 되어버린 그레고르를 원망할 수밖에 없었다.
결국 그레고르는 아직 제 안에 남아있는 인간성마저 철저하게 외면당한 채, 방구석에서 쓸쓸히 죽음을 맞이하게 되고 마침내 골칫거리가 사라진 가족들은 행복한 삶을 맞이하며 이야기가 마무리된다. 그레고르가 여동생의 바이올린 소리에 반응하며 아직 자신이 인간이구나 깨닫는 작은 희망이 결국 버림받고 외롭게 죽음을 맞이하는 장면은 아직도 잊혀지지 않는다. 떠올릴 때마다 마치 내가 가족들에게 버림받은 것처럼 슬픔과 동시에 자연스럽게 우울이 찾아왔다. 그러나 나는 내 안에서 잔잔하게 일렁이는 감정들을 떨쳐내고 싶지 않아 아주 오랫동안 되새겼다.
책 속에서 가장 흥미로웠던 부분은 4가지 정도였다.
1. 벌레가 된 그레고르가 아침부터 회사 욕을 하는 장면
- '내가 너무 고된 직업을 가진 탓이야! 하루가 멀다 하고 매일 출장을 가야 하니 회사에 앉아 일하는 것보다 훨씬 스트레스도 많고, 게다가 출장을 다니는 고달픔은 늘 부담스러워. 매번 기차를 갈아타느라 신경 써야지, 불규칙하고 형편없는 식사에, 항상 상대가 바뀌어 결코 지속될 수도 진실로 대할 수도 없는 인간관계. 모두 지옥에나 떨어져 버려라!'
- 그레고르는 왜 하필 지극히 사소한 게으름을 부려도 자기만 유난히 극도의 의심을 받는 그런 회사에 다니는 팔자가 되었을까?
2. 그레고르를 대신하여 일을 나가게 된 그의 아버지
- 하지만 그렇다 해도 정녕 저 사람이 아버지란 말인가? 예전에 그레고르가 출장을 다녀오면 지쳐서 침대에 푹 파묻혀 있던 그 남자란 말인가? 저녁때 집에 돌아오면 잠옷을 입고 안락의자에 앉아 그를 맞아주던 사람, 일어서기는커녕 반가운 표시로 두 팔만 쳐들었던 사람..(중략) 그런데 이제 그 사람은 꼿꼿이 서 있었다.
3. 동생의 바이올린 소리를 듣고 내면의 인간성을 깨닫는 그레고르
- 하지만 여동생은 아주 멋지게 연주하고 있었다. 그녀는 고개를 옆으로 기울이고, 조심스럽고도 슬픈 시선으로 악보를 따라가고 있었다. 그레고르는 조금 더 앞으로 기어 나가 어떻게든 여동생과 시선을 맞추기 위해 바닥에 머리를 바짝 갖다 댔다. 이토록 음악에 감동하는데도 그가 동물이란 말인가?
4. 그레고르의 죽음
- 그는 가족들을 다시 감동과 사랑의 마음으로 돌이켜 생각했다. 자신이 사라져야 한다는 생각은 여동생보다 그가 더 확고히 가지고 있을 것이다. 이런 상태로 그는 시계탑의 종이 새벽 세 시를 칠 때까지 공허하고도 평화로운 생각에 잠겨 있었다. 창밖으로 날이 밝아오기 시작하는 것도 아직 느낄 수 있었다. 그런 후에 그의 머리가 저도 모르게 푹 수그러졌다. 그리고 콧구멍에서 마지막 숨이 약하게 새어 나왔다.
특히, 그레고르의 죽음에 관련된 부분은 드라마에서 서문조라는 캐릭터가 희생자에게 그대로 읽어주기까지 했다.
그레고르는 자문하며, 어둠 속에서 주위를 둘러보았다.
곧 그는 전혀 몸을 움직일 수 없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 사실이 이상하게 생각되지는 않았다.
이토록 가는 다리로 지금까지 움직일 수 있었다는 것이 오히려 부자연스럽게 느껴졌다.
한편, 비교적 편안한 느낌이 들었다.
종우씨가 지금 이런 기분 아닐까요?
책 속 주인공이 출퇴근을 반복하는 직장인이라는 것에 초점을 두면 사물적인 삶(수동적)을 살아가던 그레고르가 결국 사물(벌레)이 되어버린 것으로 해석되기도 하는데, 그런 주인공의 죽음은 사물이 되어버린 상황에서 벗어나는 것을 뜻하게 되며 결국 내면의 광기를 숨긴 채, 벌레같이 살던 종우가 가스라이팅을 통해 서문조가 원하는 하나의 작품 (광기에 찬 본모습을 그대로 드러내는)으로 재탄생된다고 생각 하여 이런 대사를 삽입한 것이 아닐까 조심스레 추측해본다.
이 모든 것이 어쩌면 내 이야기라고 생각했다.
가족들과는 입사와 동시에 떨어져 살았고, 사람에 치이고 상처받은 나는 집에 돌아와서도 혼자였다. 건강과 휴식을 반납해서 내 몫으로 떨어진 돈을 반으로 쪼개 집으로 보내고 방구석에서 홀로 슬퍼했다. 무슨 일이 있었는지, 나는 그 일을 겪으며 무슨 생각이 들었는지 어떤 마음이었는지 알아주는 이는 결국 나뿐이었다.
그때 인생은 결국 혼자라는 것을 절절하게 깨달았다.
제 아무리 가족이라도 이해관계와 경험이 다른 타인이라는 것은 어쩔 수 없기 때문에 그들은 당연히 이 아픔을 모를 수밖에 없다. 단순히 몰라준다고만 생각해서 서운하고 서러웠던 적도 많았지만 벽을 향해 징징대는 꼴 밖에는 되지 않으며 내가 어렸을 때 원하고 꿈꾸었던 멋있는 어른의 모습도 아니라 그만두었다.
어른이라고 해봤자 별거 없지만 말이다. 어쨌든 다양하게 해석해보는 재미가 있는 책임과 동시에, 쉽게 공감할 수 있고 동시에 깊은 여운까지 느껴볼 수 있었어서 프란츠 카프카의 변신은 가장 좋아하는 책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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